관조,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발견하기

배철현 교수의 <심연> 중 2부에 관한 내용이다.

묵상, 나를 돌아보게 하는 제 3의 눈-

동일한 사물이나 사람을 깊이 응시하고 자신이 사라지는 상태로 진입하는 단계를 ‘관조’라 한다. 인간은 가면을 쓴 존재다. 우주에서 자신에게 맡겨진 유일한 배역을 알고 있는지, 그것을 알았다면 최선을 다했는지 묻는 존재라는 뜻이다.

단절, 과거의 나를 과감히 버리는 용기-

인간에게 남겨진 것은 과거라는 기억뿐이다. 혼돈에서 질서로, 없음에서 있음으로의 질적인 변화는 ‘처음’이라는 특별한 순간을 통해 가능하다. 처음이란 질적으로 전혀 다른 상태로 진입하기 위한 경계의 찰나다. 충격적이고 압도적이어서 전율하게 하는 문지망이다. “창조하다”라는 의미는 삶의 깊은 관조를 통해 쓸데없는 것을 과감히 제거하는 거룩한 행위를 통해 자신의 삶에 있어 핵심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숭고, 불완전한 나를 끌어안는 삶의 태도-

숭고함은 경외, 두려움 공포에 대한 반응이다. 산다는 것은 자신 앞에 놓인 불안전한 삶을 한결 같은 인내로 거침없이 걸어가는 일이다. 마음속 ‘꺼지지 않는 가시덤불’은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를 애타게 부르고 있다.

사유, 내가 나에게 줄 수 있는 거룩한 선물-

사유란 내 손에 쥐어져 있는 정과 망치를 통해 어제까지 내가 알게 모르게 습득한 구태의연함을 쪼아버리는 작업이다. 나를 더 나은 나로 변화시키는 현장은 내가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직장이며 집이고, 내가 만나는 사람이며 책이다. ‘사유’란 지금 내가 처해 있는 이 장소와 이 시간이 내 사유의 대상이며, 그것을 나를 위한 천국으로 만들고자 결심할때 신은 우리에게 미소를 선물한다.

관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연습-

관찰이란 가시적으로 보는 것을 넘어 ‘안 보이는 것을 보는’ 행위다. 우리는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보도록 뇌와 눈을 훈련해왔다. 하지만, 그 대상의 배우에 있는 어떤 것을 인식하기 위해서는 내가 지닌 관습과 편견의 시선을 제거해야 한다.

심연, 이제껏 발을 들인 적 없는 미지의 땅-

물입이란 자신을 새로운 시점, 높은 경지로 들어올려 그곳에서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는 연습이고, 알게 모르게 편견과 고집으로 굳어버린 자신을 응시하면서 그것을 과감히 유기하는 용기다. 완벽이란 더 이상 버릴 것이 없는 가장 단순한 상태다. 이런 구태의연한 것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는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래된 나로 살아갈 것이다. 과거가 되어버린 나, 정체된 나, 죽은 나의 삶을 반복하게 된다. 심연은 이제껏 발을 들여놓은 적 없는 미지의 땅이다. 이 심연의 존재를 알고 운명적인 여정을 시도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영웅’이라고 한다. 문제는 ‘돌아올 수 없는 바다’를 건너 지하세계로 내려가야 하므로, 죽음의 고통을 당하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삶의 희열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불멸을 추구하고 심연의 여정을 떠나는 그 순간이 바로 영생이라는 깨달음이다. 영생이란 ‘영원히 사는것’이 아니라 ‘순간을 영원처럼 사는’ 기술로, 영생을 추구하는 삶 자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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