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각, 비로소 찾아오는 깨달음의 순간

배철현 교수의 <심연> 중 3부에 관한 내용이다.

괴물, 나를 조정하는 내 안의 또 다른 나-

괴물은 바로 내 안에서 나를 조정하는 또 다른 ‘나’다. 이 괴물은 내게 패배의 쓰라림을 안겨준다. ‘한쪽과 다른 한쪽을 구분하는 경계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는 존재’를 뜻하는 마음속 괴물은 익숙하고 게으른 과거로 돌아가라고 끊임없이 나를 유혹한다. 사람들은 이 경계에서 쉽게 포기를 선택한다. 우리에게 새로운 여정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통과 의례가 있으니 바로 자기 자신이라는 괴물과 대면하고 그것을 죽이는 일이다. 세상에서 가장 무섭고 두려운 존재, 그러나 반드시 싸워 이겨야 하는 존재는 바로 ‘나 자신’이라는 괴물이다.

임시치아, 현실에 안주하고 있는 나를 바꿀 유일한 무기-

내가 안주하고 있는 환경이 나의 멋진 미래와 자유를 억제한다면, 자신만의 임시 치아를 만들어 그 환경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리하지 않으면 자신을 억누르고 규정하며 정의하는 환경을 세상의 전부라 여긴 채 빛 한 번 보지 못하고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 하게 된다. 임시치아는 내가 갇혀 있는 이 세계가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도구로, 우리는 이 임시 치아로 편견과 상식, 전통과 관습, 흉내와 부러움이라는 알을 깨고 더 넒은 바다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가면, Show yourself 당신 자신을 내개 보여주십시오-

우리가 진정으로 응시해야 하는 것은 외부 세계가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이다. 응시의 목적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담담한 시선으로 보는 것’이다. 구태의연하고 진부한 시선이 아닌 새롭고 객관적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이렇게 일상과 나만의 시선으로 관찰하다 보면 좀 더 적나라한 자신과 마주하게 된다. 이런 행위를 회심이라고 한다. 오래된 나를 극복하려면 또 다른 나인 ‘알터 에고’가 필요하다.

갈림길, 내가 선택한 그 길에는 발자국이 찍혀 있지 않았다-

전설이란 각자의 심연에 숨어 있는 보물을 찾아 나서는 여정 이야기다. 내가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모두 숭고한 여행의 과정이자 목적지이다. 이 여행의 가장 큰 걸림돌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다. 하지만 이 두려움은 나만의 전설을 실현하는 데 꼭필요한 트레이너다. 우리는 이 두려움이라는 혹독한 트레이너를 통해 한계를 깨닫고 그것을 뛰어 넘고자 하는 의지를 갖게 된다. 중요한 것은 자신이 지금 걷는 이 길이 진리임을 믿는 것이다. 믿음이란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헤아려 알고 그것들의 우선 순위를 매기고 그것을 지키려는 삶의 태도다. 스스로에게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 깊이 헤아리는 행위가 곧 믿음의 시작이다. 최선이란 자신을 위해 최적의 선택이다. 묵상을 통해 그 유일무이한 운명의 길을 선택하는 순간은 거룩하다. 자신에게 진실한 것이 다른 이들에게도 진실한 것이라고 확신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이렇때 필요한게 자기기만이다. 이는 마음속 깊이 숨어 있는 보물을 찾아가는 숭고한 여행이다. 이 여행은 그것을 지켜보는 이들 또한 그 보물을 찾아 나설 수 있도록 용기와 희망을 준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번씩 길림길 위에 선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하나뿐이고, 그 순간 나는 최선의 선택을 해야한다. 그리고 그 선택을 믿어야 한다. 미래는 과거나 현재에 내가 선택한 결과에 불과하다.

멘토, 스스로 운명을 개척하려는 자에게만 찾아오는 스승-

스승은 거룩한 목적지에 도달하기 위해 가야 하는 길 위에서 최선을 다하도록 나를 촉구하는 존재다. 인격적으로 완벽한 존재이기보다 나보다 앞서 자신만의 길을 걸어가는 도반이다. 선각자다. 멘토는 ‘생각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다시 말해 ‘자신 본연의 의무를 성찰하게 만드는 사람’이다. 타인의 시선과 평가 그리고 구태의연함에 안주하는 이에게 멘토는 찾아오지 않는다. 광활한 바다에 몸을 싣고 인생의 항해를 떠날 때 멘토는 슬며시 찾아와 나의 눈이 되어주고 귀가 되어준다. 인생의 최상의 멘토는 나 자신이다.

진부, 나에게 찾아오는 새로움을 막는 훼방꾼-

영적이며 지적인 수련을 방해하는 훼방꾼 중 하나는 ‘진부’함이다. 고기가 썩는 줄도 모르고 남들에게 과시하는 사람을 가리켜 진부한 사람이라고 한다.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자신의 강점으로 알았던 고기 때문에 결국 망하고 만다는 것이다. 진부함이란 산의 정상에 오르겠다고 마음먹었지만 지친 나머지 산 중턱에서 머뭇거리는 상태를 말한다. 진부한 사람은 자신 속에서 흘러나오는 침묵의 소리를 듣지 못할 뿐만 아니라, 자신만의 삶의 안무를 갖지 못한다. 인간의 귀는 언제나 다른 사람들의 평가와 인정에 목말라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남의 것이나 따라는 삶이 계속되는 한 자신만의 고유한 문법을 만들어내는 참신한 삶은 찾아오지 않는다. 진부는 우리를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머뭇거리게 하는 끔찍한 훼방꾼이다.

자립, 당신 자신과 무관한 그 어떤 것도 추구하지 마십시오-

인간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스스로를 일어나 걷기 시작한다. 이렇게 스스로 바로 서는 행위를 ‘자립’이라고 한다. 홀로 설 수 있느냐는 질문은 육체적으로 두 발을 땅에 딛고 설 수 있는냐는 물음일 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나아가 영적으로 독립적인 인간이 될 수 있느냐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독립적으로 서는 법을 거의 배운적이 없어서 지연, 학연, 혈연에 의족하기 일쑤다. 위대한 혁신가들은 전통이나 관습에 기댄 타인의 생각을 거침없이 잘라버린다. 그리고는 이전까지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새로운 길’을 탐색한다. 새로운 길이란 자신의 삶을 위한 최선의 길이며, 최선이란 내 삶에 있어서 모든 것을 걸고 추구해야 할 나만의 임무다. 우리가 철학이나 종교, 과거 문화나 문명을 고부하는 것은 그것을 만든 이들의 천재성을 찬양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그들의 천재성을 감지하고, 우리 스스로 자신의 철학과 종교, 삶에 대한 새로운 노래를 만들기 위해서다. 자림을 원한다면 내 삶에서 엑스트라를 분별해내고, 그것들을 제거해내는 일을 먼저 해야 한다. 엑스트라를 선별하는 과정을’생각’이라고 하고, 생각은 세상을 바꾸는 위대한 공식이나 철학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생각은 내 삶에서 없어도 되는 것들을 분별해내는 능력이다. 엑스트라를 제거하는 순간, 우리는 비로소 자립하게 된다. ‘거룩한 선물은’은 마음속에 있는 쓸데없는 것들을 제거할 때 미세하지만 맑은 소리를 내기 시작한다. 가만히 눈을 감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이소리가 전해주는 내 마음 안의 우주, 그 조화로운 질서 속에서 나짝 빛나는 나만의 천재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은 괴물에서 벗어나 자립으로 갈수있는 자신만의 ‘공간’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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